배는 오다 / 드미트리 굴리아 白石의 노래

백석이 번역한 드미트리 굴리아(1874-1960)의 이 시는 <근대서지> 2호(2010. 12.31)에 정선태 교수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참고로, 정 교수는 발문 <백석의 번역시>에서 관련 자료를 제공해 준 세 사람 -- 오영식, 박성모, 엄동섭 -- 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백석이 옮기고 평양 조쏘출판사에서 1957년 발행된 <굴리아 시집>에는 총 3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굴리아는 압하지야 태생의 작가이자 시인, 언론가로 압하지야 문자로 시를 썼다. 백석은 굴리아의 러시아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번역 작업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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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오다


드미뜨리 굴리아 (백석 역)


이 무슨 어두운 밤이랴, 옆에서 뺨을 쳐도 모르게.
요란한 싸움은 식고 원수들 산산이 부서지고.
이 밤중 절벽 같은, 깊디깊은 괴괴함 속에서
넘실거려 물결 흐르며 번득거림에 내 좋아 취하누나.

이 순간 괴이한 불 하나 번쩍 솟더니 깜박거린다---
지척 못 가릴 어둠 속에 켜지는 듯 다시 없다.
바다에 그림자 비치며 떨다는 꺼지는 그 불,
어디로부터 솟은 것이랴--헤아리기 못내 어렵구나.

오랜 놀람 지나간 이제야 내 비로소
시름도 없이 빛나는, 반가운 눈을 보누나---
우리네 남쪽나라 물굽이로 즐거운 배는 돌아온다,
가지가지 불행과 불운을 벗어나 기쁨에 빛나며.

솟았다는 떨어지며 산 같은 물결 기슭으로 내닫는다
물결을 밝게 비치며 기선은 안개 속에 나타나
그칠 줄 모르는 새된 기적, 온 사방에 떠들썩---
온 물가에 이 즐거운 소리, 귀에 익은 소리.

물속에 흔들흔들 쌍그림자 치는 배,
표식등은 반짝여 하늘의 별 같이,
참으로 내 오래 못 보았구나 이렇듯 밝은 불,
이 배에 손길 얹어 가장자리 쓰다듬어 거닌다.

찬 뱃전에 드거운 볼을 대자---
억센 가슴 진정 잃어 울렁거렸다.
이 여름 밤 그 물결치는 격동을 이길 길 없어,
우리 가슴 소리도 고요히 뛰고 또 뛴다.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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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그레이브스 / 1915 達磎의 노래

1915


나는 라 바쎄와 베뛴 사이의 들판에서
계절들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나가는 것을 보았네;
앵초와 처음으로 다사했던 봄날
유월의 빠알간 양귀비 물결,
팔월과 황금빛 가을, 그리하여
겨울밤 무릎 깊이의 진흙과 눈,
그리고 당신은 모든 것이었어라.

살틀한 이여, 혼을 빼놓는 이곳 참호 속에서
그대는 내가 못 가진, 세상의 모든 것이라 ― 사진, 책,
음악, 고국 숲의 고요함, 아름다운 동료의 눈빛,
산으로 뻗은 좁다란 자갈길,
광대하고 포근한 검푸른 바다,
그리고 평화, 또한 좋은 그 모오든 것.

―로버트 그레이브스

1915년은 그 전 해에 터진 1차 세계대전의 긴장이 날로 고조를 더해가는 해였다. 라 바쎄와 베뛴은 모두 프랑스 북부의 마을. 전장의 군인들은 추억과 대화로 버틴다는 말이 있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당연 러시아군...! 이 시를 쓴 사람은 영국인이지만 《고요한 돈강》의 숄로호프와 《와씰리 조르낀》의 A. 뜨와르도프쓰끼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전쟁문학은 세계대전 중 구 소련 병사의 강인함과 순수함을 지켜준 보배 중의 보배이었다.

 
I’ve watched the Seasons passing slow, so slow,
In the fields between La Bassée and Bethune;
Primroses and the first warm day of Spring,
Red poppy floods of June,
August, and yellowing Autumn, so
To Winter nights knee-deep in mud or snow,
And you’ve been everything.

Dear, you’ve been everything that I most lack
In these soul-deadening trenches—pictures, books,
Music, the quiet of an English wood,
Beautiful comrade-looks,
The narrow, bouldered mountain-track,
The broad, full-bosomed ocean, green and black,
And Peace, and all that’s good.

Robert Graves

통영 미륵도 달아공원의 석양. 2015.6


김영랑 / 지반추억 達磎의 노래

이 시는 전체적으로 시인이 의도적으로 퇴행적인 표기법을 사용한 듯하다.

'지반
(池畔)'의 뜻을 찾아보니 '연못의 변두리'를 뜻한다.

발표지는 아직 확인이 안 된다.

영랑은 비탈진 조금 높은 곳의 땅을 지칭할 때 '언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두던'을 사용함을 이 시에서 알 수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http://stdweb2.korean.go.kr)에서는 '두던'을 '언덕'의 평안도 방언, 또는 '언덕'의 옛말로 설명하고 있다.

* * * * * * *



지반추억(池畔追憶)

                           김영랑

깊은 겨울 햇빛이 따사한 날
큰 못가의 하마 잊었던 두던길을 사뿐
거닐어가다 무심코 주저앉다
구을다 남어 한 곳에 쏘복히 쌓인 낙엽
그 위에 주저앉다
살르 빠시식 어쩌면 내가 이리 짖궂은고
내 몸 푸를 내가 느끼거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앉어지다?
못물은 치위에도 달른다 얼지도 않는 날세
낙엽이 수없이 묻힌 검은 뻘 흙이랑 더러
들어나는 물부피도 많이 줄었다
흐르질 않더라도 가는 물결이 금 지거늘
이 못물 왜 이럴고 이게 바로 그 죽음의 물일가
그저 고요하다 뻘흙속엔 지렁이 하나도
꿈틀거리지않어? 뽀글하지도 않어 그저
고요하다 그 물 위에 떨어지는 마른 잎
하나도 없어?
햇빛이 따사롭기야 나는 서어하나마 인생을 느꼈는데.
여나문해? 그때는 봄날이러라 바로 이 못가이러라
그이와 단 둘이 흰 모시 진설 두르고 푸르른
이끼도 행여 밟을세라 돌 위에 앉고
부풀은 봄물결 위에 떠노는 백조를 희롱하여
아즉 청춘을 서로 좋아하였었거니
아! 나는 이지음 서어하나마 인생을
느끼는데.

* * *

원본은 다음과 같다.
(끝 7행 확인 요)

池畔追憶

깊은 겨울 해빛이 다사한 날
큰 못가의 하마 잊었든 두던길을
삿분 거니러다가  무심코 주저앉다
구을다 남어 한곳에 쏘복히 쌓인
낙엽 그 위에 주저앉다
살르 빠시식 어찌면 내가 이리 짖구진고
내몸푸를 내가 느끼거늘
아무렇지도 않은듯 앉어지다?
못물은 치위에도 달른다 얼지도 않는 날세
낙엽이 수없이 묻힌 검은 뻘
흙이랑 더러 드러나는 물부피도 많이 줄었다
흐르질 않드라도 가는 물결이 금 지거늘
이못물 웨 이럴고
이게 바로 그 죽엄의 물일가
그져 고요하다
뻘흙속엔 지렁이 하나도 굼틀거리지않어?
뽀글 하지도 안어 그져 고요하다
그물위에 떨어지는 마론잎 하나도 없어?
해볓이 다사롭기야
나는 서어하나마 인생을 느꼈는듸
연아문해? 그때는 봄날이러라

바로 이 못가이러라
그이와 단 둘이 흰 모시 진설 두르고 푸르른
이끼도 행여 밟을세라 돌 위에 앉고
부풀은 봄물결 위에 떠노는 백조를 희롱하여
아즉 청춘을 서로 좋아하였었거니
아! 나는 이지음 서어하나마 인생을
느끼는데.


자랑스러운 역사의 기치 達磎의 노래

옛님이 지나친 발자취 그 누가 알아
속비인 古木 너는 아느냐
때때 너를 찾아와
쉬어가고 울다가는 저 - 孰公(숙공)이나 아는가?
(꺼우리무-스 꺼우리무-스 네 이름만이남엇다)

비 바람 모질고
흘러간 세월의 물길 거침어워슴을 알네라
髑髏(촉루)이 코 골든
띄집(墓)마저 살아젓느니
무엇이 이뒤의 빈터를 마르리?
(꺼우리무-스 꺼우리무-스 네 이름만이남엇다)

分明 님 이곳에서
저믈도록 써 너흐시다
그리다 이곳 변죽을 億萬年 두고 직히려
자랑스러운 歷史의 旗幟 꼽어두고
스스로 띄집속에 몸을 숨기신지 그 몇해?
(꺼우리무-스 꺼우리무-스 네 이름만이남엇다)
ㅡ 한얼생, '高麗墓子(꺼우리무-스)', <만선일보> 1940년 8월 7일

일제가 만주 일대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의 인력과 물자를 효과적으로 전시체제에 동원하기 위해 발행한 <만선일보>는 이전의 <만몽일보>와 <간도일보> 두 신문이 통합되어 1937년 10월에 창간된 신문이다. 이 신문에는 한얼생이라는 필명으로 몇 편의 시가 1940년에 발표되었는데, 이 한얼생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이 시의 2연에 등장하는 한자어 '髑髏'에 대해 이 시를 맨 처음 자신의 편저 <백석시전집>(학영사, 1995)에 소개한 송준은 한동안 두번째 글자(髏) 미판독 글자로 남겨놓았다가 2012년 하반기에 이를 '髏'(해골 루) 자로 판독, 수록하여 새 <백석시전집>을 출간했다(흰당나귀).

백석이 독자적으로 독보적인 시적 성취를 구현했다는 현 문단의 평가를 일소(一笑)에 부치는 백석 연구가 김달진은 최근의 백석다시읽기 모임에서 신석정과 김기림의 작품에서 무덤과 죽음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함을 지적하며, "이는 천재시인으로 평가를 받는 백석이 결코 독자적으로 시를 쓴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근거 자료로서 아래의 시 두 편을 인용했다. 

  산정에는 찢어진 하늘의 펄럭이는 푸른 깃폭 속에, 우리들의 가쁜 숨결이 숨어 있고,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전쟁이 뿌리고 간 고운 피를 머금은 파란 도라지꽃들의 회화가 잦은데, 파도처럼 달려드는 바람소리 말을 달려 간 골짜구니마다 하얀 髑髏가 동굴 같은 눈언저리에 눈부신 태양을 받아들이곤 이슬같이 수떨이고 있다. 

  축제도 끝났다. 
가면무도회도 끝났다.
인젠 모두 우리들의 때묻은 검은 야회복을 벗어 던져도 좋다. 

  이렇게 촉루와 도라지꽃이 난만한 산을 데불고 꽃잎 같은 시간을 맞이하고 지우고 지우고 맞이하는 동안 슬픈 강물엔 우리들의 역사도 띄워 보냈다. 

  탕자처럼 돌아올 줄 모르는 인공위성이 몇천 바퀴를 돌아가도, 하늘은 하늘대로, 땅은 땅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짐승은 짐승대로, 의연히 그들의 무도회와 촉루와 도라지꽃을 구상하는 욕된 세월 속에

  다시금
가져야 할 축제를 마련하면
그것이 '내일'이라는 희망 속에서, 
무수한 절망과 자살과 투옥은 계산되는 것이다. 

  산이여!
너는 그러기에 오늘도
통곡을 생각하는 슬픔 속에 서 있는가?
통곡하라!
목놓아 어서 통곡하라. 
'내일'!
'내일'의 축제를 위하여!
ㅡ 신석정, '祝祭 : 산이여 통곡하라', <대바람 소리>(1970)

일요일 아츰마다 양지 바닥에는
무덤들이 버섯처럼 일제히 돋아난다. 

상여는 늘 거리를 돌아다보면서
언덕으로 끌려 올라가군 하였다. 

    아모 무덤도 입을 벌리지 않도록 봉해 버렸건만
  묵시록의 나팔소리를 기다리는가 보아서
  바람소리에조차 모다들 귀를 쭝그린다. 

조수가 우는 달밤에는
등을 일으키고 넋없이 바다를 굽어본다. 
ㅡ 김기림, '공동묘지', <인문평론> 1호, 1939.10

김달진은 한얼생과 신석정, 김기림의 시 세 편이 모두 무덤과 그 무덤 속에 자리한 해골('촉루')을 중심으로 한 죽음의 이미지를 주요 소재로 하고 있으며, 이것이 신석정의 경우에는 "하늘의 펄럭이는 푸른 깃폭"과 "파도처럼 달려드는 바람소리"와 "말을 달려 간 ... 눈부신 태양"에 대한 그리움으로, 김기림의 경우에는 '나팔소리', '바람소리'에 대한 염원으로, 그리고 한얼생의 경우에는 "자랑스러운 歷史의 旗幟"와 "옛님이 지나친 발자취"에 대한 간절한 바람으로 등, 세 사람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극복하고자 하고 있다라고 분석한다. 

그는 세 시인 모두의 간절한 기원은 '깃폭'과 '기치(旗幟)'를 꽂는 상징적인 행위로 성취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기원을 일제 하의 조선의 광복으로 획일적으로 수렴해버리는 기존 평가들의 매너리즘적 해석은 선배 시인들의 삶과 예술혼을 또다시 죽이는 반(反)문학적인 행위로서 젊은 독자들은 이러한 교과서적 해석의 굴레를 한시 바삐 내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얼생과 신석정과 같은 맥락에서 '기()'를 소재로 시를 발표한 또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청마 유치환이다. 이러한 연관성에 주목할 경우, 그가 1942년 2월 6일자 <만선일보>에 발표한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覺悟)'를 몇몇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가 친일행적에 가담한 것을 증명하는 부왜(附倭) 작품으로 보기란 무리이다. 문제의 시와 산문은 아래와 같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먼저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ㅡ 유치환, '깃발', <조선문단>, 1936  

오늘 대동아전의 의의와 제국의 지위는 일즉 역사의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비류(比類)업시 위대한 것일 겝니다.

이러한 의미로운 오늘 황국신민(皇國臣民)된 우리는 조고마한 개인적 생활의 불편 가튼 것은 수(數)에 모들 수 업는만큼 여간 커다란 보람이 안업니다. 시국에 편승(便乘)하여서도 안될 것이고 시대에 이탈(離脫)하여서도 안될 것이고 어데까지던지 진실(眞實)한 인간생활의 탐구(探求)를 국가(國家)의 의지함에 부(副)하야 전개(展開)시켜 가지 안으면 안될 것입니다.

나라가 잇서야 산하(山河)도 예술도 잇는 것을 매거(枚擧)할 수 업시 목격하고 잇지 안습니까. 

오늘 혁혁(赫赫)한 일본의 지도적 지반(地盤) 우에다 바비론 이상의 현란(絢爛)한 문화를 건설(建設)하여야 할 것은 오로지 예술가에게 지어진 커다란 사명(使命)이 아닐 수 업습니다.
ㅡ 유치환,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覺悟)', <만선일보>, 1942년 2월 6일



 



 
   


행복 / 칼 샌드버그 達磎의 노래

행 복

                            

인생의 의미를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리고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는

   대기업 사장들도 찾아가 보았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는 내가

   자기들을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웃음을 지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후 데플렝 강가를 배회하다가

   나는 한 무리의 헝가리인들이 나무 아래

   그들의 부인과 자녀와 맥주통과 아코디언과

   같이 있는 걸 보았다.

                   一 칼 샌드버그 (1878~1967)



1893년 세계박람회가 시카고에서 열린 후, 문화의 주변부이기만 했던 미국 중서부의 이 도시에 차츰 문예부흥의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련의 문예운동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소설가 시어도어 드라이저, 시인으로는 에드가 리 매스터스와 바첼 린지가 있었다. 1914년에는 H. 몬로와 M.C. 앤더슨에 의해 각각 문예지 『시(Poetry)』와 『소평(Little Review)』이 창간되었다.

일리노이주 게일스버그 태생의 스웨덴계 대장장이의 아들인 칼 샌드버그가 시카고에 온 것은 그의 나의 25세인 1913년一. 벽돌공에서부터 이발소 점원, 접시닦이로 밑바닥 인생을 온몸으로 맛본 샌드버그는, 읽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의 거칠고 솔직한 시 <시카고>를 이듬에 『시』에 발표한다.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서의 시카고의 부흥을 축하하는 것으로 샌드버그의 동명 제목의 이 시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었다. 진정한 미국정신의 중심에 시카고를 세우려는 이런한 일련의 움직임은 소위 문학과 예술의 '시카고 르네상스'를 구가(謳歌)하게 되었다.

샌드버그의 시는 내용적으로는 급진적 민중주의를 표방하며 형식적으로는 실험적인 자유주의를 담고 있다. 머리에 피가 서게 하는 선동적인 문구와 경탄이 절로 나오는 적확한 시어가 어우러진 그의 시는 1920~30년대 미국인들 사이에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시집으로는 『시카고 시집』(1916) 외에 『옥수수를 까는 사람들(Cornhuskers)』(1918), 『연기와 강철』(1920), 『태양이 작열하는 서부의 슬래브』(1922)가 있다. 여기 소개한 <행복>은 『시카고 시집』에 수록된 작품으로, 시카고 데플랭 강가의 풍경을 목판화처럼 간결히 그려냄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독자들로 하여금 다시 곱씹게 만든다.

샌드버그는 1926년부터 1939년에 무(無)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모든 것을 성취한 사람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전기를 집필하기도 하는데, 2부작 총 6권으로 구성된 이 필생의 역작은 1940년 그에게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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